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오해와 편견 (문단 편집) == [[미군]]이 [[북베트남]]으로 북진을 했으면 이길 수 있었다? == 시작하기 전에 요약하자면 '''[[그런 거 없다]].''' 설령 점령한다 하더라도 유지할 수도 없고, 점령 단계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이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과 베트콩, 북베트남군과의 압도적인 교환비가 공개되고 나서 일부 보수적 미군 관련 인사들이 주장하는 '미군은 최선을 다했는데 핵전쟁 확전을 두려워한 겁쟁이 정치인들이 결단을 못 내려서 망했다.' 수준의 북진론을 무분별적으로 수용한 것과 냉전이 끝난 이후 한국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게릴라]]전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가 약해져서인데, 당장 대규모 정규전인 [[독소전쟁]]부터가 독일군의 압도적인 교환비로 소련군에게 피해를 강요했지만 전쟁은 오히려 패배한 것에서 보듯, 교환비는 전략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특히 게릴라전은 일반적인 군사작전보다 정치적 여론이 더 중요한 전쟁으로, 점령지와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점령군은 현지 게릴라보다 더 낮은 수준의 폭정을 저질러도 점령지 현지 여론 지지도가 현격하게 떨어지며, 게릴라는 점령지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 만으로도 점령군에 대한 적대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747931|전쟁의 미래]] ] 즉 점령군이 게릴라전에서 이길려면 현지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치안 및 행정업무가 원할이 돌아야 하고, 게릴라와 현지 촌락의 접촉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미군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지원해 줘야 할 [[남베트남]] 정권은 잦은 쿠테타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마비된 상태였고 그나마 현지 사정을 이해하던 실무진의 의견은 미국이나 남베트남 수뇌부가 무시해버렸다. 당시 미국 정부는 악화되어가는 전쟁 상황을 국민들에게 숨기는 데 급급했으며, 미군 일반 병사들은 일선과 현장의 괴리, 그리고 잘못된 대민 정책 수립 등으로 인해 비우호적인 현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임무 수행 능력이 바닥나고 있었고 남베트남 정권은 잦은 쿠테타로 인한 정국 불안정으로 인해 게릴라전이 일어나는 지방을 보호할 능력이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진을 한다고 해 봐야 남베트남의 게릴라를 소멸시킬 수 없을 뿐더러, 북베트남은 이런 저런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호치민도 자기 정책에 반발하는 농민들을 숙청하는 등 북베트남 공산 정권도 정권을 잡는 동안 내부적 문제가 없던 건 아니었다.] 최소한 남베트남에 비하면 정권 지지기반이 안정적이었므로 전선만 더 커졌을 뿐, 오히려 군사적 소모만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실제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으로 전선이 확장되지도 않고 그저 남베트남만 지키려고 시도했는데도 '''미군의 전사자만 5만이 넘었다.''' 가뜩이나 막장군대로 유명한 남베트남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공세부분을 담당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이 북진했을 때 그 전사자는 얼마나 폭증했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미군의 전사자가 5만이 넘은것은 그 전쟁의 특성상 20여년의 세월동안 베트콩 게릴라들을 상대로 두더지잡기식의 끝이 없는 교전으로 피해가 계속 누적된것임을 고려해야한다. 북베트남을 상대로 기존의 베트공 소탕과는 다른 전면적인 공세로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으면서 진공해 들어가 북베트남 주요영토를 일시 점령하는 것 까지만 한정하면 의외로 적은 피해로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미군이 진공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직한 힘겨루기를 북베트남군이 해줄리가 없고, 이전의 프랑스를 상대하듯 가급적으로 전면전은 피하다가 미군이 장악한 군사거점 및 도시들을 계속 치고 빠지는 식의 유격전을 전개해 나가면서 야금야금 미군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면 남베트남에서 베트콩을 상대하는것과는 또다른 지옥이 펼쳐진다. 미국의 성공작이었던 걸프전과 졸작이었던 아프간전의 가장 큰 차이중 하나가 전자는 이라크군에 대한 섬멸 및 격퇴전이었지만 후자는 탈레반을 몰아내는것에서 끝이 아닌, 아프간 영토를 점령 및 유지하는 전쟁이었음을 상기해보자.]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진하면 당시 '''[[소련]]과 [[중국]]이 가만히 있었을까?''' 자칫하다가는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정치인들이 겁쟁이거나 멍청이라서 북베트남 북진을 포기한 게 아니다. 미국이 세운 베트남전의 전략적 목표는 남베트남 정권의 안정이었으며, 북베트남의 멸망은 전략전술적으로 도움을 주기 매우 어렵다.[* 북베트남만 해도 중국과 소련이라는 물주가 있고, 동남아에는 호치민 루트가 뚫린 이상 북베트남으로 전선만 확대해 봐야 통제 불가능한 점령지만 늘어날 뿐, 전황을 바꾸진 못하며, 오히려 더 많은 군비를 지출하느라 타격이 커질 수 있다.] 게다가 남베트남 전쟁에서 들어가는 전쟁 비용 때문에 미국의 경제가 악화되고 사회 분위기도 개판이 난 시점에서 최소 비슷한 비용이 들어갈 북베트남 침공전에 들어갈 전비부터가 아무리 미국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점령조차도 쉬운 게 아닌데,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보이지만 압도적인 화력으로 한달만의 적군을 무너트려도 이후 점령 단계에서 현지 민심의 이반과 잔존세력 소탕 실패로 인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점령지 대부분을 사실상 상실하고 반군에게 넘겨주고 친미세력이 장악한 도시나 미군 기지에 갇혀버리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심지어 이들 [[무자헤딘]]들은 장비도 복제 AK 수준으로 조악하고 조직력도 부족한 무장집단 수준이었지만 당시 북베트남군은 이전 프랑스군과의 교전에서 얻은 경험과 소련, 중국의 지원을 받은 유격전에 능한 군대였고, 베트남 전 당시 미군의 전투능력은 기술력의 한계와 낮아진 사기로 인해 21세기의 미군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라 전투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점령 단계에서 더 큰 출혈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결국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미군이 이길 수는 있어도, 치안과 행정이 병행이 되는 점령전에서는 기껏 전투에서 이기고 얻은 점령지를 치솟는 유지 비용[* 이 유지비용에는 당연히 점령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력의 인적 손실도 포함된다.] 때문에 그냥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빈발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상황은 50만 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서도 남베트남 내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던 베트콩들을 소탕하는 데 실패했고,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농촌지역에서 민심을 사로잡는데 철저히 실패했다. 태생부터 프랑스 식민주의적 유산을 토대로 탄생한 남베트남에서도, 내부평정 계획이 번번히 실패했는데, 비록 유혈적 희생은 있었지만 토지개혁과 단기간의 사회주의적 생산기반을 마련한 북베트남에서 미군이 진격하여 내부평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미군과 남베트남 연합군의 북진 시 중국이나 소련이 참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베트남 지도부는 과거 항불전쟁 시기 프랑스군을 상대로 북부에서 게릴라전을 경험하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를 통해 승리를 이룩한 집단이었다. 즉 쉽게 무너질 세력들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남베트남 내부도 평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진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는 중국의 참전을 배제한 상황에서의 이야기고, [[6.25 전쟁]] 당시를 생각하면 실제로 북베트남을 침공했을 경우 중국이 참전을 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이런 식으로 전술적 승리만 해 봐야 전략적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수십 년 뒤, [[소련]] 스스로가 전쟁을 일으키다가 [[소련]] 그 자신을 무너트린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스스로 증명했으며]], 정작 미국 스스로조차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같은 장소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의 교훈을 망각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